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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일기/밥상 위의 세상22

매년 같은 자리에서, 미역국을 끓인다.가자미살미역국 미역국,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같은 자리에서, 미역국을 끓입니다.오늘은 친정아버지 생신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가자미살을 바르고, 미역을 불리고, 국을 끓였습니다.아침드시기전 갖다드리려고 서둘렀지요.그 중 조금 덜어둔 미역국 한 그릇은 저희 가족의 아침 밥상 위로 올랐고요. 남은 가자미살 두 덩이는 쌀부침가루와 계란물로 감싸 노릇하게 부쳐냈습니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던 배추 한 포기. 길쭉하게 썰어 소불고기에 함께 볶았죠. 아삭한 배추의 식감은 소불고기의 풍미를 덜어내는 대신 더 따뜻한 속마음을 불러옵니다. 사소한 재료들, 단출한 밥상이지만 그 안엔 매년 아버지 생일을 기억해내는 마음,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조용히 흐르는 애정과 책임이 담겨 있습니다. 미역국.. 2025. 5. 14.
애호박전은 익어가는데, 누군가는 불을 꺼버립니다. 애호박을 썰었습니다.둥글고 얇게, 하나하나 정성스럽게요.쌀부침가루를 살짝 묻히고 계란물에 적셔서달궈진 팬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습니다. 팬 위에서 애호박전이 지글지글 익어가는 동안 옆에선 삼겹살김치찌개가 뽀글뽀글 끓고 있었습니다. 제법 따뜻하고 만족스러운 아침입니다. 애호박전은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한쪽이 익었다 싶으면 얼른 뒤집어야 하고 너무 오래 두면 타버려요. 반대로, 조급하게 서두르면 속이 설익어 흐물흐물하죠. 그러니까 이건, 작은 타이밍의 예술입니다. 그런데 요즘 뉴스를 보면 마음이 어둡습니다. 준비된 법안들이 있습니다. 오랜 숙의 끝에 다듬어진 민생 대책들, 돌봄, 주거, 안전, 일자리 같은 삶의 문제들을 다룬 것들이죠. 이미 팬 위에 올려진 상태입니다... 2025. 5. 13.
이번엔 밥까지 비벼졌다. - 메추리알조림처럼, 조화로운 정치를 꿈꾸며. *메추리알양배추고기조림* 오늘 밥상엔 색다른 메추리알조림이 올라왔습니다. 돼지고기 다짐육을 볶고, 양배추를 썰어 넣고, 그 위에 까진 메추리알을 올려 조림 양념으로 자작하게 졸였죠. 조림을 숟가락으로 툭 떠 밥 위에 올리는 순간, 한 그릇의 맛이 완성됩니다. 고기, 채소, 달걀. 각자의 맛이 있되, 밥과 어울릴 때 진짜 역할이 드러나는 조합이죠. 예전의 조림은 달랐어요. 메추리알만 강조됐고, 고기는 따로, 양배추는 설익었고, 간은 겉도는 느낌이었어요. 그땐 내부에서도 서로 따로 놀았으니까요. 당 안에서도, 조율 없이 자기 목소리만 냈던 지난 대선의 풍경처럼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고기와 채소와 달걀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의 양념으로 졸여지고, 조용.. 2025. 5. 12.
덮고 끓였지만, 씁쓸한 정치의 맛 - 치즈김치볶음밥과 토마토스튜 오늘 아침, 치즈를 덮은 김치볶음밥과 보글보글 끓인 소고기토마토스튜로 밥상을 차렸습니다. 김치볶음밥은 매콤한 김치와 밥을 볶아낸 뒤, 그 위를 모짜렐라 치즈로 덮어 오븐에 구운 형태. 겉은 노릇하고 속은 뜨거운 이 그라탕은 겉보기엔 치즈 요리지만, 안을 파보면 한식의 깊은 맛이 숨어 있습니다. 소고기토마토스튜는 토마토와 양파, 당근, 감자, 그리고 큐브로 자른 소고기를 넣고 천천히 끓인 스튜예요. 국물은 새콤하면서도 고기에서 우러난 감칠맛 덕분에 깊고 진합니다. 이 조합은 보기엔 서양식 같지만, 입에 넣으면 어쩐지 한식 밥상 같기도 하죠. 오늘의 밥상은,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의 풍경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국민의힘이 내놓은 '단일화 쇼', 체코 원전 수주 .. 2025. 5. 9.
향기란, 살아낸 자리에서 나는 것 - 돌미나리 밥상 위의 봄 돌미나리는 물 좋고 흙 좋은 자리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돌이 많고 땅이 거친 곳에서, 뿌리를 힘겹게 내리고 자라나죠. 그래서일까요. 그 향은 더 강하고, 줄기는 더 단단합니다. 오늘은 그 돌미나리로 밥상을 차렸습니다. 소불고기 위에 살짝 올려 마무리한 돌미나리불고기, 살짝 데쳐서 들기름과 소금에 조물조물 무친 돌미나리나물, 그리고 반죽에 섞어 바삭하게 지진 돌미나리전까지. 재료는 단순하지만, 향기만큼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 향은 애써 살아낸 자리에서만 피어나는 것 같으니까요. 거친 땅에서 자라야만 나오는 향,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도 묵묵히 피워내는 봄의 냄새. 밥 위에 올라온 이 봄은 그냥 봄이 아니라 살아낸 계절입니다. 그리고 문득, 사람도 그렇겠다는 생각.. 2025. 5. 8.
버스는 늦어도, 죽은 먼저 끓여야 하니까. 오늘 아침, 전복죽을 끓였다.전날 밤부터 불려둔 쌀, 정성껏 손질한 전복.끓기 시작한 냄비 앞에서,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죽은 서두른다고 빨리 완성되지 않는다. 불을 낮추고, 거품을 걷고, 천천히 저어야만 부드럽고 속이 편한 ‘한 그릇’이 된다. 오늘 서울 시내버스가 늦었다. 하지만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준법투쟁’이라는 단어가 뉴스 속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과속하지 않고, 정차 지점을 지키며, 쉬어야 할 시간엔 쉬겠다는 그 조용한 결심이 마치 아침 죽처럼 끓고 있었다. 준법투쟁은 소란스럽지 않다. 그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지키겠다는 선언. 무리하지 않고, 규정을 따르고, 그 안에서 삶의 리듬을 되찾겠다는 움직임. 버스가 조금 늦어도 괜찮다. 그 늦음 속에 누군가의 ‘정상.. 2025.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