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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일기/밥상 위의 세상22

제자리를 지켜낸 밥상 - 시금치된장국과 떡갈비 조용한 아침, 된장국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합니다. 멸치, 다시마, 양파를 넣고 푹 끓인 육수에 집된장을 풀고, 마지막엔 데친 시금치를 넣어 한소끔 더 끓여줍니다. 된장의 구수한 향과 시금치의 초록이 어우러지면, 그 자체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한쪽에선 돼지고기 떡갈비를 준비합니다. 다진 돼지고기에 두부와 양파, 마늘을 넣고 손으로 오래 치대 고루 섞은 뒤, 동그랗게 빚어 팬에 지글지글 구워냅니다. 불 앞에서 하나하나 뒤집으며 익히다 보면, 기름 냄새에 식욕이 먼저 차려지곤 하죠. 이렇게 오늘 아침 밥상은 된장의 깊이, 시금치의 초록, 그리고 떡갈비의 단단함으로 완성됩니다. 각기 다른 재료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어우러질 때, 비로소 맛있는 조화를 이룹니다. 요즘 세상은 조화보다는 경.. 2025. 5. 7.
조각조각 나눈 밥 한 판,계란찜밥 - 나눔의 정치, 밥상에서 시작된다. 밥은 나눌수록 정이 된다. 오늘 아침엔 밥과 계란, 다진 채소를 섞어 케이크처럼 찜을 쪘다. 예쁘게 자른 조각 위엔 케첩 한 방울. 마치 누군가의 접시를 기다리는 신호처럼. 누군가와 나눠 먹을 걸 생각하며 만든 음식은 모양도 맛도 달라진다. 혼자 먹는 밥은 대충 퍼 담아도 괜찮지만 누군가와 함께 먹는 밥은 손길 하나에도 마음이 스민다. 이 계란찜밥케이크는 말하자면 ‘합의의 결과물’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식재료로, 자르기 쉬운 원형으로, 숟가락만 들면 나눌 수 있게 준비된 형태. 밥상은 매일 열리는 회의장이자, 침묵 속에서 공감과 타협이 오가는 정치의 공간이다. 가장 어린 식구부터 먼저 덜어주고, 취향을 배려하며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는 것. 이 작은 식탁 위에도 ‘질서’와 ‘배려’, ‘배분’.. 2025. 5. 7.
내 아이는 자랐지만, 세상은 점점 비어갑니다. 어린이비율 세계최저라니... 사진 속에서 아이는 아직 작고, 물살 앞에 선 발은 조심스럽기만 했습니다.엄마 손을 꼭 잡고, 튜브 안에서 까르르 웃던 그 여름날. 지금은 그 아이가 나를 끌어안고, 나보다 더 큰 키로 내 어깨를 두드립니다.시간은 흘렀고, 아이는 자랐습니다.그리고 문득…‘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생각하게 됩니다. 미니 핫도그, 돈까스, 통닭.그 시절 아이가 좋아하던 간식들입니다.식탁 위에 올려놓으면 작은 손이 먼저 달려들었고,노릇하게 튀겨진 간식 하나로 하루가 참 즐거웠죠.그 평범한 기쁨이,이제는 뉴스 속 숫자들과 겹쳐집니다.2024년,한국은 세계에서 ‘어린이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습니다.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겠지요.아이 키우는 일이,언제부터인가 개인의 선택이나 부담으로만.. 2025. 5. 6.
한 그릇의 깊이, 한 수의 무게 - 영화 <승부>와 청국장 삶은 빠르게 흘러가지만, 진짜 중요한 건 늘 천천히 다가옵니다. 영화 승부는 말이 적습니다. 바둑판 앞, 고요한 눈빛. 돌을 하나 놓기까지의 침묵. 그 안에 수십 년의 무게가 담겨 있죠. 이창호는 기다립니다. 상대의 수를, 자신의 수를. 그리고 말없이, 단단하게 나아갑니다. 그의 기다림은 결코 수동적인 게 아니었습니다. 눈앞의 한 수를 두기 위해, 그는 수천 수를 미리 떠올립니다. 상대가 무엇을 두고, 자신은 어디까지 물러날지, 때론 져주는 수가 이기는 수가 될 수도 있음을. 그 침묵은 생각의 정지선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깊은 움직임의 순간이었죠. 바둑판 위에 놓인 건 단지 돌이 아니라 ‘시간’이었고, ‘자기 자신’이었어요. 누구의 것도 아닌, 오롯한 자기의 수를 찾아가는 길. .. 2025. 5. 6.
쌀국수는 나를 달래고, 쏨땀은 나를 깨운다.- 집에서 떠나는 짧은 여행 오늘의 밥상 비 오는 날 아침, 따뜻한 국물과 상큼한 샐러드가 어울리는 밥상을 차려봤어요. 새우쌀국수 한 그릇, 그리고 쏨땀 한 접시. 익숙하지 않은 조합처럼 보이지만, 입에 착 감기고 마음이 환기되는 맛이에요. 한국식 국밥이나 샐러드 대신, 동남아에서 배운 위로의 방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새우쌀국수 – 조용한 위로 기름기 없이 맑은 국물, 부드러운 쌀국수 면, 그리고 탱글한 새우. 무겁지 않지만 속이 꽉 차는 한끼였어요. 이럴 땐 별다른 반찬도 필요 없더라고요. 국물 한 숟갈이 마음을 다독여주는 날이 있잖아요. 쌀국수는 어느새 우리 식탁 위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음식이에요. 외식으로만 먹던 음식을 집에서, 내가 원하는 재료로 만들 수 있다는 건 작지만 확실한 자립이자, 소소한 자존감이기도 하죠. .. 2025. 5. 5.
소고기와 장어구이, 그 무엇보다 든든한 오늘 연휴의 밥상엔 가족의 안부가 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누구는 연휴가 좋고, 누구는 연휴가 더 피곤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 날엔 먹는 게 제일이다. 오늘 밥상엔 소고기, 그리고 장어구이가 올라왔다.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장어 위에 간장 소스를 살짝. 불판 위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에서 나는 소리는 마치 긴장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 같았다. 누군가는 “이제 진짜 시험 끝!“이라 외치며 고기를 연달아 집었고, 누군가는 “내일부터 다시 출근이야…” 하며 장어를 조용히 씹었다. 시험도, 일도, 인생도 고단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위로가 된다. 시험 끝, 현실 시작: 기운 내야 하는 시간 시험이 끝났다고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대학 입시는 또 다른 시작이고, 공시생들의 여름은 이제부.. 2025.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