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전복죽을 끓였다.
전날 밤부터 불려둔 쌀, 정성껏 손질한 전복.
끓기 시작한 냄비 앞에서,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죽은 서두른다고 빨리 완성되지 않는다.
불을 낮추고, 거품을 걷고, 천천히 저어야만
부드럽고 속이 편한 ‘한 그릇’이 된다.
오늘 서울 시내버스가 늦었다.
하지만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준법투쟁’이라는 단어가 뉴스 속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과속하지 않고, 정차 지점을 지키며,
쉬어야 할 시간엔 쉬겠다는
그 조용한 결심이
마치 아침 죽처럼 끓고 있었다.
준법투쟁은 소란스럽지 않다.
그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지키겠다는 선언.
무리하지 않고, 규정을 따르고,
그 안에서 삶의 리듬을 되찾겠다는 움직임.
버스가 조금 늦어도 괜찮다.
그 늦음 속에 누군가의 ‘정상’이 담겨 있다면,
그건 투쟁이 아니라 회복이다.
죽을 먼저 끓여야 했다.
그렇게 해야 하루가 무너지지 않으니까.
서두르지 않는 밥상이 주는 위로처럼,
서두르지 않는 버스가 주는 존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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