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서 끝난 줄 알았지?"
오늘 아침밥상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마음을 꼭 끌어안아주는 맛으로 채웠다.
어묵탕 한 냄비, 연근전 몇 장, 명태채초무침 한 접시,
그리고 알배기배추.
누군가는 소박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밥상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법이다.
가장 먼저 젓가락이 간 건 명태채초무침이었다.
냉장고 한켠에 오래도록 말라있던 명태채.
물에 잠깐 불리고, 고추장과 식초, 설탕, 마늘 조금.
그렇게 조물조물 무치고 나면, 바스락거리던 마른 채가 놀랍도록 부드럽게 살아난다.
그 맛은 꼭 이런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나 아직 살아 있어.”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한동안은 감정이 말라버린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누군가의 따뜻한 한마디,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음악 한 소절에
다시금 말랑해지는 날이 찾아온다.
오늘 내 마음이 꼭 그랬다.
명태채에 초장이 스며들듯, 지친 마음에 맛이 다시 스며드는 아침이었다.
"거친 것도 다시 고소하게."
연근전은 바삭하게 부쳐냈다.
흙 묻은 뿌리 채소라 투박하지만, 얇게 썰어 부쳐내면 고소함이 남다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 속에, 단단한 뿌리의 끈기가 묻어난다.
이것도 마음 같아서, 삶이 거칠어도 잘 다스리면 다정한 맛을 낼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어묵탕은 국물로 먹는 따뜻한 위로였다.
어묵은 생선살을 갈아 만든 음식이라
원래 모양을 잃은 재료들이 모여 하나가 된 셈이다.
어묵을 푹 끓이다 보면, 각자의 맛이 하나로 섞여서 묘한 조화를 이룬다.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 어쩌면 삶의 방식도 그렇지 않을까.
"본연의 맛으로도 충분한."
알배기배추는 잎이 작고 단단하다.
그 작은 잎 속에도 놀라운 단맛이 있다.
양념을 하지 않아도 배추 본연의 맛이 살아 있다.
어디서든 주연이 되지 않지만, 늘 곁에서 맛을 완성시켜주는 존재.
오늘 내가 그런 하루를 보내면 좋겠다고, 배추 한 장이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말랐다고 끝난 건 아니야.
그건 단지 잠시 쉬고 있던 것뿐.
맛도, 마음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걸
오늘 아침 밥상이 조용히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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